학창시절, 영어를 잘 못했던 때 학교 교제로 이 책이 채택되었었다.
매일 한 챕터씩 읽어가는 게 그땐 너무나 힘들었고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되게 무서운 책인 것을 알았다.
Jones의 농장의 동물들은 어느 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비난하며 인간들을 쫓아내고 돼지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농장을 세우기로 한다.
영리한 돼지들은 점점 탐욕스러워지고 그들의 욕심을 보호하기 위해 개들을 거느리며 농장의 발전을 위해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라며 감언이설 하며 동물들을 거느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동물들의 노동은 많아지고 배식은 줄었지만 더 이상 과거의 삶이 어땠는지 기억할 수 없어 비교하기도 불가했을뿐더러 번번이 돼지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
율법을 자신 돼지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살살 바꿔가던 어느 날, 돼지들은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사람의 옷을 입고 술을 마시고 카드게임을 하며 사람 행색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 대면한 날, 나머지 동물들은 돼지의 속셈을 알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 소설은 당시 소련 탄생의 핵심 과정을 동물들의 이야기를 빌어 새롭게 꾸며낸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인식을 솔직하게 담아낸 책이기도 하다.
혁명을 통해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입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탈린을 상징하는 돼지 나폴레옹은 권력을 잡고 스탈린의 비밀경찰을 상징하는 나폴레옹의 개들은 동물들이 늙고 굶어 죽을 때까지 부리고 대신하여 싸워 죽게 만든다.
어렸을 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많이 알고 있었다면, 조금 더 관심이 있었다면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충분한 충격과 생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된다.
책의 모든 내용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바로 위에 사진에서 보이는 문구이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조금 더 평등하다.
얼마나 지능적으로 탐욕스러운 말인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잔혹하고 이기적이며 냉소적인 것이 사람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내용이다.
돼지가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사람이 돼지로 보이기도 하고 다시 반대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진짜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렇다... 정말 소름 끼치도록 탐욕스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당시 세상에 대한 경멸이 소설에 짙게 묻어난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세상은 가축의 배설물과 한데 뒤섞인 진흙탕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비판도 비난도 아닌 순수한 경멸과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다시금 탐욕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를 부디 인류가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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