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북한의 룡강이라는 곳에서 길러진 특수요원이었던 지동철은 조국에서 버림받고 아내와 딸아이의 상실에 충격받아 남한으로 내려온다. 남한에서 지내며 원수인 리광조를 찾아다니며 복수를 계획한다. 그러던 중 자신을 아껴준 박회장의 살해현장을 우연히 목격하고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쓰게 된다. 죽어가던 박회장은 한 마디 유언과 함께 안경을 지동철에게 맡긴다. 사건을 지휘하는 김석호는 옛 전우인 민세훈을 불러 지동철 사냥을 지시한다. 한편 김석호의 뒤를 캐다 길거리에 내앉은 최경희 기자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해쳐 대중에게 공개한다.
우리나라에서 민감하기도 하면서 영화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는 남북의 정황으로 탄생한 또 하나의 영화다.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기도 어렵고,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어쩌면 믿고 싶은 쪽으로만 믿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영화를 볼 때마다 불편한 것은 어쩔수가 없다.
극단적일 수는 있겠지만, 헐리웃의 전쟁이나 히어로영화와 단편적인 비교를 해보고자 한다. 헐리웃영화를 보면 한국사람인 나도 미국인에 동화되어 애국심 같은걸 느끼게 된다. 애국심을 키우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보게되면 정부에 대한 의심을 키우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기분이 든다.
무슨 말이냐하면, 헐리웃영화는 일단 내부든 외부든 전쟁중인 국가와 관련한 범죄가 일어나면 우리나라의 국력은 세계 짱이고 어떤 범죄도 국력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하나되어 무찌르면 언제나 늘 우리가 이긴다.. 식의 베이스를 깔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한 우리나라 영화는 북한의 어떤 폭력적 상황을 정당하게 포장을 하려고 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용의자를 보면서도 내내 불편했던 것이 북한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좋게 지내려고 하는데 오히려 정부에서 못살게 군다라는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편협한 자세로 영화를 이해했기 때문인지 몰라도 반대로 되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좋게 살고 있는데 북한에서 간첩이 내려와서 훼방을 놓으려고 하지만 정말 대단한 한국 정부는 코웃음치면서 옆으로 팔괴고 누워 북한을 격퇴한다라는 베이스가 있어야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안그래도 요즘 국정이 소란스럽고 위화감도 돌고 있는 시정인데, 국가에 대한 믿음을 키워줘야 하는 영화는 커녕 우리나라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라는 이미지만 심어주는 것은 영화가 잘못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맹신하고 묻어주자는 것은 아니지만 힘없는 경찰, 흔들리는 정부조직, 말도 안되게 넓고 거대한 범죄조직은 국산영화에 너무나 자주 등장하고 있고 이런 영화는 오히려 역기능만 한다고 본다.
영화는 일반 대중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만큼 그 파급력도 영향력도 대단하다. 영화에서 경찰이나 정부조직 등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기관들을 헐리웃 영화들 처럼 대단하고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게 도와줘야지 오히려 반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부디 고려를 해봤으면 하는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리광조가 죽음의 문턱에서 지동철에게 "나도 살고 싶어 그랬다"라고 말을 한다.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모든 행동을 취한다. 그것이 어떤 방식이던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던간에 사람들은 살기위해 한다. 목표는 다르더라도 각자의 살기위해 하는 일들은 모두 치열하다. 때로는 상처받지만 아닌 척 해야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줘야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두가 살기위해 하는 것이다. 나는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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