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dafe라는 행사 기간 중 Running sushi라는 작품을 감상했다.
아르코 예술 극장에서 하는 공연이였는데, 과제를 위해 찾아간 자리였지만 과제가 없었더래도 한 번쯤은 찾아갔을 공연이다. 이 무용단은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제목은 러닝 스시. 회전 초밥. 제목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나의 짧은 지식은 이해를 못하겠다.
공연장에서 시작을 기다리는데 시작시간은 4시 인데 4시가 되도록 입장 시작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슨일인가 하고 있는데 공연장 문을 열고 두 명의 외국인이 초밥이 얹어진 도마를 들고 나왔다. 사람들에게 마음껏 먹으라고 했지만 겨우 열몇개인데 뭘 맘껏 먹으라는건가 하고 외면을 했다. 잠시 후 공연장 문이 열렸고, 속속들이 입장을 시작했다. 들어가 자리를 찾기도 전에 무대 위에는 아까 본 그 두명의 무용수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공연은 시작된 것이였다. 좌측에는 통역사와 안무가가 서있었고 발치에는 뭐라고 써있는 카드들이 놓여있었다. 안무가가 말하기를, 이 작품은 2D세계의 만화안에 살아가는 남녀의 생활을 3D로 풀어낸 작품이지만 2D이고, 이 작품은 관객이 선택한 순서대로 진행이 되며 그 해석 또한 관객 개개인의 나름으로 하는 것이다 라고 말을 했다. 다시 말하면, 공연 전에 관객들이 집어간 초밥에는 각각의 제목이 붙어 있었고, 무작위로 집어간 순서대로 그 날 그 날의 공연 또한 무작위로 순서가 진행되는 것이다라는 말이다. 기가 막힌 것은, 통역사는... 통역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다른 의미로 앞 뒤 다 잘라먹고 전달을 하다니.. 내가 들은 내용은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통역가와 안무가가 뒤로 들어간 후 공연은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다. 무대 위의 가운데에는 다른 작은 무대가 또 있는데 이것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마이다. 초밥을 올려놓는 도마. 각각의 초밥이 담고 있는 내용이 넘어갈 때마다 암전으로 막을 구분했고 각각의 막에는 그 내용에 적합한 배경색을 뒤로 쏘았다.
토론거리가 될만한 것은, 이 작품이 미성년자는 관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였는데, 이유는 이 두 무용수가 누드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누드와 나체의 차이는 이미 확연하게 다름을 알고 있으니 왜 누드가 문제가 되느냐라고 질문할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함께 고려해야 할 점은 과연 누드가 필요했는가라는 것이다. 작품의 작품성이 높고 낮은 것에 따라 누드가 필요하고 필요없고가 정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비 전공자이고 그리 깊은 지식이 있는것도 아니기에 작품성은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 얘기는 다시 하기로 하고, 누드로 돌아가면, 누드로 춤을 추는 것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 이야기를 풀어가는지에 대한 그 막의 제목이 모호했다는 점이다. 사실 지금은 그 막의 제목이 생각도 나지 않지만, 반드시 누드여야만 이야기가 성립이 되는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은 확연하다. 어쨋든, 이 부분이 상당히 뜨겁다는 것도 확실하다.
현대 무용. 현대 라는 접두사가 붙는 현대 미술, 현대 무용, 현대 음악 등 현대 작품들은 그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다. 페인트통을 집어 던지고 예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맨하탄 한 복판에서 줄을 단 바이올린을 바닥에 끌고가며 음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화폭에 점하나 찍고 예술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모호한 것이 현대 뭐시기 인데, 이 현대 무용도 상당히 모호했다. 현대 무용작품을 많이 접한것이 아니라 잘은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상당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무용이라고 하면 일단 음악이 있고 무용수들이 들고 뛰고 하며 말 그대로 춤을 추는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고 나서 제일 먼저 느낀점은, 무용이라기 보다는 마임연기에 더 가깝지 않나라는 것이였다. 마임연기. 음악은 일상 배경음악이였고, 대사가 있고, 움직임도 지극히 소극적이였다. 이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나와 동의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연이 좋다 나쁘다를 논할 수는 없다. 안무가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무용수는 그 아이디어를 동작으로 표현을 했고, 나는 작품을 보고 미묘한 감정을 느꼇으며 박수도 보냈다. 공연은 공연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노력을 퍼부은 여러 사람의 열정에 감동을 해야하는 것이다. 정말 형편없는 공연이 아니고서 그 공연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했느냐는 보는 사람의 입장차이이지 결코 공연 그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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